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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전설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감독 : 쥬세페 토르 나토레
출연 : 팀 로스,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멜라니 티에리, 빌넌, 피터, 본핸 등
장르 : 드라마, 판타지, 뮤지컬
개봉 : 2002년 12월
수상 : 57회 골든 글로브 음악상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배에서 살았던 전설의 피아니스트

생활고로 자신의 분신과 같은 트럼펫을 악기상에 팔러 온 맥스
악기상 주인에게 마지막으로 트럼펫을 연주해볼 것은 간청하여 연주하는데, 놀랍게도 그 곡은 악기상이 최근에 얻은 낡은 레코드판에서 들은 음악과 같은 음악이다. 악기상은 이 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에 대해 묻고, 맥스는 과거를 회상하며 그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나인틴 헌드레드 TD 레몬
그는 1900년대의 시작을 알리며, 이민자가 많이 오가던 배에서 버려진 갓난아이였다. 그를 처음 발견한 부두맨이 그의 이름을 나인틴 헌드레드로 짓고, 아이는 배 안에서 태어나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배의 제일 아래에서 석탄을 퍼담으며 일하던 아빠는 사고로 죽게 되고, 진짜 고아가 된 나인틴 헌드레드는 배에 홀로 남게 된다.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고아원에 보내질 법도 하지만 그는 어릴 적부터 피아노에 뛰어난 두각을 드러낸 덕분에 배 안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뒤, 신입 트럼펫 연주자로 나인틴 헌드레드가 있는 버지니아 호에 오게 된 맥스. 그렇게 주인공 나인틴 헌드레드와 만남의 계기가 시작된다. 맥스는 처음 배를 탄 탓인지 심각한 배 멀미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런 맥스 앞에 나타난 나인틴 헌드레드는 흔들림에 요동치는 배 안에서도 평온하게 걸어 다녔다. 심지어 그랜드 피아노의 바퀴 고정장치까지 풀고, 피아노를 마치 놀이기구 마냥 타고는 자유로운 연주를 즐겼다. 처음엔 불안한 맥스였지만 점점 요동치는 배와 그에 스며드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신나는 연주에 심취하면서 그 상황을 즐기게 된다. 맥스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합주 때마다 즉흥연주로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던 나인틴 헌드레드의 이야기를 점점 유명해져 갔다. 그렇게 그는 버지니아호의 명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맥스는 어느 날, 그에게 왜 배에서 내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육지사람들은 '왜'라는 질문으로 인생을 낭비해

얼마 후, 낯선 사람들이 그를 찾아온다. 이유도 모르고 도망쳤지만 배 안에서 달리 숨을 곳은 없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재즈의 창시자라 불리는 '젤리 롤 모튼'이 보낸 하수인들이었다. 나인틴 헌드레드의 명성이 육지에 퍼져있었고, 그와 피아노 배틀을 겨루고 싶었던 것이었다.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그를 조롱하면서 젤리가 직접 버지니아 호에 탑승하기로 한다. 원치 않는 배틀이지만 이미 수많은 기자들까지 동원된 배틀이었고, 이를 개의치 않았던 나인틴 헌드레드는 배틀 당일 해맑게 젤리에게 악수 제안을 하지만 젤리는 이를 거부하고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배틀의 시작은 재즈의 창시자 젤리부터 선공하기 시작한다. 그는 명성처럼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게 된다. 반면 나인틴 헌드레드는 단순한 캐럴을 연주하거나 젤리가 연주한 곡을 그대로 따라 하는 듯 그를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게 된다. 나인틴 헌드레드가 이길 것이라는 내기를 하게 된 버지니아호 식구들은 내기에 패할 위기에 처하자 그의 자존심을 긁게 된다. 그렇게 나인틴 헌드레드는 진심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배틀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그렇게 더욱 유명해진 나인틴 헌드레드. 하지만 그는 끝내 하선을 거부하게 된다. 그런 그를 위해 레코드 제작업체에서 직접 그를 찾아와 녹음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게 악기상 사장이 들었던 음반이었던 것이다. 한창 리코딩 작업을 하던 도중 주인공 앞에 나타난 한 여자. 그는 그녀에게 반하게 된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의 이미지를 연주로 그려나가게 되고, 그것이 레코드에 그대로 녹음된 것이다. 그는 큰 계약이 걸려있었지만 그 레코드판을 가지고 그녀에게 전해주려 나가게 된다. 그렇게 처음으로 하선을 망설이게 된 순간이 왔다. 하지만 그는 배가 낡아 폐선 처리하는 날까지 배에서 내리지 못했다.

 

주인공에게 배(ship)의 의미

주인공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배에서 단 한 번도 내린 적 없는 인물이다. 화려한 크루즈였던 버지니아 호에서의 삶이었기 때문에 그가 살아온 삶의 이면이 다소 가려졌지만, 그는 파티와 같은 삶은 산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불운에 가까운 삶이었다. 태어나자마자 크루즈에 버려지고, 자신을 입양한 아버지마저 어린 나이에 잃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슬픈 기색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음악을 듣게 된다. 어쩌면 이때 그의 모든 감성을 음악으로, 피아노를 통해 승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피아노를 치게 된 시기가 아버지인 데니의 죽음 이후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크루즈에서 화려한 피아니스트로 살면서 명성을 떨치게 되지만 배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특히 젤리와의 대결 이후 그가 육지에 닿기만 하면 떼돈을 벌며 호화로운 삶을 살 수도 있지만 그는 결코 배 밖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버지니아 호 자체가 그의 존재를 알려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호를 떠나면 나인틴 헌드레드라는 인물이 없어지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숙식 해결은 물론 배는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더불어 그의 음악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배는 그에게 충분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첫사랑이 준 첫 결핍

나인틴 헌드레드는 불운하지만 불운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가 갓난아기에 배에 버려지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것이다. 유년 시절을 육지에서 보내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무렵 배에서 버려졌을 경우를 예상해본다. 아마 자신을 입양해준 아버지에게 배에서 내리고 싶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떼를 썼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바로 배에서 내렸을지도 모른다. 또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음을 알고 후에 하선하여 육지에서 또 다른 명성을 떨치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날 때부터 단 한 번도 배에서 내린 적이 없기 때문에 육지에 대한 희망이나 갈망은 없다. 더불어 그는 배에서 충족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행운아는 아니만 '결핍된 인물' 또한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첫사랑이 찾아온다. 레코드를 녹음하고 있는데 창문을 거울삼아 얼굴을 닦던 의문의 여인. 그는 난생처음으로 육지 세계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그 첫눈에 반한 여인을 만날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끝내 주인공은 배에서 발을 떼지 못했고, 그에게는 아버지의 죽음 처음으로 결핍이 찾아오게 된다. 어쩌면 아버지 데니가 죽었을 대는 음악이 그에게 대체되었지만 이미 음악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첫눈에 반한 그 여인을 대체할 것은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첫사랑과 더불어 처음 결핍을 느끼게 된 것이다.

 

배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이유

그가 배를 내리지 않는 것을 '두려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속 대사에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나를 멈추게 한 건, 내가 본 것들이 아니라 내가 본 것들이야

너무도 많았던 길(road)과, 너무도 넓은 세상이 단지 음악 속에서 살아가는 그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이었다. 그에게는 그런 복잡성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아니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혼란스러운 복잡함에 가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면 그는 피아노 건반 속에서, 정해진 음 사이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만들어가는데 편안함을 느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주인공이 처음 피아노를 치던 장면에서 그는 정해진 규율을 부정하는 말을 뱉는다.

망할 놈의 규칙

그런 그가 피아노라는 정해진 건반 속에서, 또는 '배'라는 정해진 공간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참 모순적이다. 너무 많은 선택권이 부담스럽고, 거기에 압박을 느낀 나인틴 헌드레드는 바깥세상으로의 도전을 포기하게 된다. 오히려 그에게 작은 공간이었던 버지니아 호에서는 배안에서의 규율 속에서는 자유를 느꼈던 것이다.

명성도, 셀 수 없을 정도의 부도 그를 세상 밖으로 유인하지 못했지만, 사랑은 그를 처음으로 육지라는 세계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그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 위대한 '사랑'도 수 없이 많은 선택권 속에서는 하나의 '선택'이라고 느껴지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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