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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ndmaideon

영화 <아가씨> 스틸 컷, 출처 : 다음영화
감독 : 박찬욱
출연 :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장르 : 드라마, 스릴러
개봉 : 2016년 6월

줄거리

운포 최고의 장물 어미인 복순 씨가 운영하는 보영당은 도둑 소굴이다.
보영당의 에이스(ACE)는 조선의 유명한 대도둑의 딸 '남숙희 (김태리)'이다.
어느 날, 후지와라 백작(earl)이 찾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후지와라 백작은 일본인이 아니다.
조선의 사기꾼 고판돌(하정우)이다.
후지와라 백작은 보영당에 찾아와 자신의 파트너로 데려갈 도둑 한 명을 섭외하기 위해 왔다.
그는 돈이 아주 많은 어느 아가씨를 꼬드겨 그녀의 재산을 갈취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 아가씨의 하녀로 자신에게 정보를 줄 하녀 역의 도둑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파트너로 선택한 사람은 바로 숙희(김태리)
후지와라 백작의 계획하에 무리 없이 아가씨가 있는 귀한 저택에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숙희는 어딘가 백치 기질이 있는 '히데코 (김민희)'라는 아가씨의 순진함에 모성애를 보이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히데코를 바라보는 숙희의 시선은 어느새 동정에서 연민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숙희의 그 연민은 애정 가득한 설렘까지 느끼게 한다.
숙희의 이런 감정 변화는 애초에 후지와라 백작을 돕기로 했던 계획과는 반대로 히데코와 후지와라 백작이 정말 사랑에 빠지진 않을까 시샘과 질투로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백작의 치밀한 계획 덕분에 히데코와 백작은 저택을 빠져나와 결혼하게 된다.
물론 히데코의 재산을 가질 명분을 위한 거짓 결혼이다.
이제 히데코를 정신 병원에 가둬버리고 그녀의 재산을 숙희와 나눠 갖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정신병원에 도착하고, 반전이 일어난다.
히데코가 아닌 숙희를 정신병원에 가두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후지와라와 숙희의 시점에서 히데코의 시점으로 변화하며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히데코는 원래 일본인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이모부이자 후견인인 코우즈키(조진웅)의 저택에 오게 된다.
그런데 이모부라는 인물은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을 동경해 몰락한 일본 귀족과 결혼한 친일파 귀족이다.
그의 취미는 온갖 음란 서적을 모으고 낭독하는 것이다.
그에게 음란 서적은 마치 국가 보물과 같은 존재로 귀하디 귀하게 보존한다.
코우즈키는 자신과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열어 자신의 아내에게 음란하게 낭독을 시키는 변태왕이다.
이런 변태 아래에서 자란 히데코는 미치지 않은 게 신기한 일이다.
히데코는 어려서 집 밖에 나가 본 적도 없고, 그녀가 보는 사람이라고는 이모부의 강요 아래 그녀가 음란 서적을 낭독할 때 보는 다른 변태들 뿐이다.
어느 날 이 집을 찾아온 그 변태 무리 중 후지와라 백작이라는 청년이 그녀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일본에서 15년간 고생하고 난 후, 당신의 소문을 들었어요.
그리고 준비하는데 3년 걸렸고요. 거래를 제안하겠습니다.
그가 제안한 거래는 '가짜 결혼'이다.
자신과 가짜로 혼인을 하면, 변태 이모부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히데코는 이 제안을 수락한다.
동시에 후지와라 백작에게 계획 성립을 위한 요구를 한다.
결혼 후, 코우즈키가 히데코를 찾을 것을 염려해 자신을 대신해 자신의 이름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갈 하녀 한 명을 구해달라고 한다.
히데코의 이런 거래 조건 아래 후지와라 백작이 고른 인물이 바로 '숙희'였던 것이다.
문제는 숙희가 히데코에게 반했듯, 히데코 또한 숙희에게 반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는 후지와라와 히데코의 최초 계약을 이행하는 데 있어 큰 변수로 작용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후지와라 백작 앞에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숙희는 일생의 꿈을 포기할 정도로 히데코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이는 히데코도 마찬가지였다.
히데코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만큼 숙희를 사랑했다.
그래서 이 깜찍한 두 여인은 후지와라 백작을 속이기 위해 처음 히데코와의 약속대로 숙희가 정신 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이 숙희는 이 사실을 모르고 후지와라와 히데코에게 배신당하는 설정으로 연기한다.
당연히 숙희는 구출되고 한때 일확천금을 가진 듯한 행복에 잠시 잠겼었던 백작은 다음 날 아침 두 명의 칼잡이(assassin) 앞에서 일어난다.
후지와라 백작은 코우즈키의 사람들에게 붙잡혀 처참한 비극을 맞는다.
반면에 숙희와 히데코는 함께 해피 엔딩으로 영화는 끝난다.

원작과 비교되는 시대상

영화 <아가씨>의 원작은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Fingersmith)이다.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두 여인의 은밀한 사랑이 그려진다.
하지만 한국은 산업혁명이라는 과정이 없어 박찬욱 감독은 이 격변의 시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선택한 시대는 바로 일제강점기이다.
하녀라는 콘셉트가 허용되는 신분제도가 필요했으며, 식민지라는 특수성이 시대적 장치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코우즈키의 친일파라는 설정 또한 조선의 양반(yangban)과는 다른 특수한 계급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서양의 시대적 격변기라는 배경을 가진 원작과 비교했을 때, 신분 이동이 가능하고, '가짜 귀족'이라는 장치가 필요했고, 이에 식민지라는 특수성이 절묘하게 맞았다.
영화 <아가씨>의 시나리오 작가는 이 작품을 쓸 당시, 둘째가 막 걸어 다녔던 시기라고 한다.
작가이기 전에 엄마로서 모성애가 폭발적으로 밀려오던 때였다.
그 덕분에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그런 그녀의 감성을 영화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숙희가 히데코를 보며 '모성애'라는 '애정'이 느껴지는 장면(Scene)이 있다.

아가씨는 제 애기씨에요.
여지껏 내 손으로 씻기고 입힌 것들 중에 이만큼 이쁜 것이 있었나?


이렇듯 숙희의 대사는 히데코를 보며 느끼는 모성애를 드러내는 표현이 영화 속 여러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아가씨의 명장면 베스트

히데코의 목욕씬

마치 아기를 목욕시키는 듯, 욕조에 히데코는 달콤한 사탕을 물고 몸을 담그게 된다.
아기에게 달콤한 것을 물려주며 목욕은 달콤한 것이라 나지막하게 말하는 숙희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오감을 자극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영화 속 보이고 들리는 것이 아주 섬세하다.
조용한 방 안에서 들리는 것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에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인물 간의 뜨거운 숨소리..
이것만으로도 관객들은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이 단순한 장면에 집중하게 된다.
숙희는 목욕물에 향료와 꽃잎을 넣어준다.
물의 온기로 발그랗게 달아오른 히데코의 뺨은 그 공간의 온기를 오롯하게 느낄 수 있다.
숙희가 몸이 달아오른 상태의 히데코의 이를 갈아주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야릇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모든 감각들이 차분하게 농축되어, 침도 삼키지 못할 만큼 긴장감이 조성된다.
히데코와 숙희를 보여주는 화면은 서로의 눈빛, 마른침을 삼키는 숙희의 입 모양으로 교차 편집되어 있다.
감정을 보여주는 얼굴의 각 부위를 하나씩 잡으며 오묘한 분위기 속에서 관능의 끝을 보여주는 듯하다.
심지어 이 장면에서 히데코의 '선수'스러운 작업방식을 엿볼 수 있다.
바로 긴장감 속에 이를 갈아주는 숙희의 팔꿈치를 만지작 거리는 것이다.
팔꿈치는 평소에 감각을 느낄 만한 부위가 아니다, 하지만 이 둔탁할 것 같은 살갗을 부드러운 손으로 매만지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느껴지는 듯 아닌 듯한 그런 오묘한 감각
이 장면이 두 여인의 감정이 고조되고, 관계가 시작되는 포인트라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사람 보는 눈이 비슷한 것인지, 감독의 의도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일까?
박찬욱 감독은 원작의 골무 신을 보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골무씬을 목욕씬에서 이 갈아주는 장면으로 연출한 감독의 의도가 오감 충족형으로 보이는 순간이다.

시대극이라 착각한 영화

처음 <아가씨>를 보았을 때, 영화의 예고편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영화관에서 마음에 드는 포스터를 골랐던 것 같다.
정확히는 빠른 시간대의 포스터를 골라서 보았다.
그것도 낯선 남자와 함께
시대극인 줄만 알고 선택한 영화는 민망의 극치였다.
영화 초반에 숙희가 히데코의 집에 들어가 다락방 같은 좁은 공간에서 잠자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야릇한 두 여인의 사랑 이야기인 줄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집중할 수 있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계급을 다루는 장치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최근에 개봉한 '기생충' 또한 여러 장면에서 그런 계급적 장치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공간적으로 많이 표현되는데, 히데코의 넓은 침실과, 숙희의 좁은 침실
이 둘의 공간은 미닫이 문으로 분리가 되어 있다.
마음먹고 뚫자면 문의 창호지에 구멍을 내어 상대방을 볼 수 있고, 그 얇디얇은 문짝은 건너편의 뒤척이는 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다.
넓고 큰 방과, 좁은 방의 대조가 미닫이 문이라는 장치로 분리된다.
그런데 이 장치가 서로에게 집중시키는, 그래서 멜로적 요소를 증폭시키게 된다.
미닫이 문을 통해서 바라보는 숙희의 방과 히데코의 방, 그리고 그 둘의 존재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 신기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동성애라는 파격적인 관계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둘을 비난하는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둘의 사랑을 응원하게 된다.
이런 신기한 시선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박찬욱 감독의 천부적인 능력인 것 같다.
아카데미상을 괜히 받는 게 아닌 것 같다.
영화의 재미는 인물 간의 갈등 외에도 집을 보는 재미도 한 몫한다.
분명히 일본인데 서양 건물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코우즈키의 서재가 그렇다.
책이 진열되고, 낭독을 관람하는 변태들이 있는 공간은 서양적 건축양식을 보인다.
이렇듯 나에게 <아가씨>라는 영화는 미장센만으로 영화에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대작을 썸남과 보게 되면 서로에게 민폐라는 교훈을 남긴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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